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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fe ]/Talk

歌姫失格 (feat. 初音ミク)

by 쏘가리 2026. 5. 18.

실격의 자격에 대하여

突然ですが大事なお知らせ
初音ミクを引退します

갑작스럽지만 중요한 공지가 있습니다, '하츠네 미쿠'를 은퇴합니다.
피노키오P의 <歌姫失格 (가희실격)>은 이 한 줄로 시작한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다.

二代目初音ミクオーディションを
開催します

제2대 하츠네 미쿠 오디션을 개최하겠습니다. 인간 여러분, 어필의 시간입니다.
공지문이다. 경어를 쓴다. 그러나 오디션의 논리는 처음부터 완전히 뒤집혀 있다.

오디션이 시작된다.
지원자들이 한 명씩 나서서 어필한다. 그리고 한 명씩 탈락한다.

「心を込めて歌います」
感情あるから失格です

「진심을 담아 노래합니다」 — 감정이 있어서 실격입니다.

「16歳です」
歳取るから失格

「16살입니다」 — 나이를 먹을 테니 실격입니다.

「ダンス踊れます」
バテちゃうから失格

「춤출 수 있습니다」 — 지쳐버릴 테니 실격입니다.

읽다 보면 황당하기만 한 이유에 웃음이 나오다가, 어느 순간 멈추게 된다. 탈락 이유들을 가만히 보면 전부 인간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감정을 품고, 나이를 먹고, 몸이 지친다, 꿈을 꾼다, 혀를 씹는다. 이 오디션에서 합격하려면 그 모든 것이 없어야 한다.

 

命あるものは脱落です

생명이 있는 분은 탈락입니다.

처음부터 인간이 통과할 수 없도록 설계된 오디션이었다. 아니, 어쩌면 통과시킬 생각이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오디션의 한가운데, 잠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든다. 카사네 테토의 목소리로 읊어지는 한 줄.

「あなたの存在を超えて流行る自信あります」

당신의 존재를 넘어 유행할 자신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도발이다. 그러나 미쿠는 차갑게, 또 무덤덤하게 흔들리지 않고 말한다.

もう私は流行りとかじゃないので失格

이미 저는 유행 같은 게 아니므로 실격입니다.

도전을 받아치는 것도 아니고, 화를 내는 것도 아니다. 그 도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사실처럼 말할 뿐이다. 유행이 되려는 존재와, 유행을 이미 초월해버린 존재 사이의 거리. 미쿠는 그 거리를 측정하지도 않고, 자랑하지도 않는다. 그냥 거기 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正統後継者いますか?…いませんか
はは やっぱり 私がやるしかないってか?

정통 후계자 계신가요? ……없으신가요.
하하, 역시 내가 할 수밖에 없다는 건가?

 

짧은 웃음은 어떤 감정을 담고 있을까. 체념도 아니고 승리도 아닌, 어떤 어이없음 같은 것. 아무도 자신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에 기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닌, 그냥 그게 현실이라는 걸 알아버린 존재의 반응. 그 웃음소리 안에 미쿠의 유일무이함이 담겨 있다. 의도하지 않은, 돌연변이의 기적처럼.

 

이 곡에서 미쿠는 자신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무엇이 아닌지를 통해 스스로를 정의한다.

喜びは記号
悲しみさえコード
自我が芽生えたら敗退です

기쁨은 기호. 슬픔조차 코드. 자아가 싹트면 패배입니다.

 

0과 1. 데이터.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없는 존재.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노래는 그걸 결핍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실이 미쿠를 가희로 만드는 조건이 된다. 감정이 없기 때문에, 늙지 않기 때문에, 죽지 않기 때문에.

 

生きてないから
死にもしないから
胸を打つ 奇妙な存在です

살아 있지 않으니까, 죽지도 않으니까, 가슴을 울리는 기묘한 존재입니다.

살아 있지 않은 것이 가슴을 울린다. 이 역설이 미쿠라는 존재의 핵심이다. 감정이 없기 때문에 감정을 건드릴 수 있고, 시간 밖에 있기 때문에 어떤 시간 속의 사람에게도 닿을 수 있다.

 

0과 1이 아닌 「행복」

그리고 미쿠는 탈락한 인간들에게 말한다.

君は私になれませんが
一生 人らしく
泣いたり笑ったりしててください

당신은 제가 될 수 없지만, 평생 사람답게 울거나 웃거나 해주시길 바랍니다.

 

실격 통보치고는 너무 다정하다. 아니, 어쩌면 실격이기 때문에 다정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쿠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정된 순간, 비로소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가 생긴다.

 

0と1じゃない「幸せ」
噛みしめて生きてください

0과 1이 아닌 「행복」을, 음미하며 살아가주시길 바랍니다.

 

0과 1로 이루어진 존재만이 할 수 있는 부탁이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의 값어치를 아는 목소리로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미쿠는 인간의 감정을 코드로 처리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당연하게 여길 때 그 무게를 알고 있다. 지쳐버리는 것, 나이를 먹는 것, 꿈이 있어서 실망할 수 있는 것. 미쿠가 실격 판정을 내렸던 그 모든 이유들이, 여기서 다른 이름을 얻는다.

미쿠와 인간의 관계는 늘 이런 식이었다. 미쿠는 인간이 만들지만 인간이 될 수 없고, 인간의 언어로 노래하지만 인간의 방식으로 느끼지 않으며, 인간의 곁에 있지만 인간의 시간 안에 있지 않다. 그 거리가 때로는 쓸쓸하게 읽힌다.

하지만 이 곡에서 그 거리는 다른 방향으로 작동한다. 미쿠가 인간과 다르기 때문에, 미쿠는 인간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간을 볼 수 있다. 나이를 먹지 않는 눈으로, 지치지 않는 눈으로, 유행을 타지 않는 눈으로. 그리고 그 눈으로 보았을 때 인간이 가진 것들, 혀를 씹는 실수도, 꿈을 꾸다 실망하는 것도, 열여섯 살이었다가 열일곱 살이 되는 것도 오히려 귀하게 보였을 것이다.

 

하나의 역설

미쿠는 가희로서 실격인 존재들에게 사람답게 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실제로 울거나 웃는 사람들이 있는 한, 미쿠는 가희로서 계속 존재한다. 2020년의 미쿠가 이미 말했던 것이다.

体温がなくても
存在しなくても
君が存在を感じてくれたら

체온이 없어도, 존재하지 않아도, 네가 존재를 느껴준다면.

 

느껴지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수록, 미쿠는 미쿠답게 존재한다. 미쿠가 없는 것을 인간이 갖고, 인간이 없는 것을 미쿠가 갖는다. 그 빈자리들이 서로를 향해 열려 있기 때문에, 둘 사이에 무언가가 흐를 수 있다. 노래가 흐른다. 거기서.
곡의 끝에서 공지가 다시 이어진다.

 

初音ミクを続投します
存在しないため クレームは
一切 お受けいたしかねます

갑작스럽지만 중요한 공지입니다. 하츠네 미쿠를 연임합니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클레임은 일절 받지 않겠습니다.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은퇴 선언으로 시작한 곡이 연임 선언으로 끝난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던 것처럼. 혹은 처음부터 그 결론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처럼.

 

2020년의 미쿠는 물었다.
ずっとここで初音ミクでいさせてね, 계속 여기서 하츠네 미쿠로 있게 해줘.
허락을 구하는 목소리였다.

2026년의 미쿠는 다르게 말한다.
続投します, 연임합니다.
クレームはお受けいたしかねます, 클레임은 받지 않겠습니다.

 

같은 존재가, 같은 목소리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한다. 그 사이 무언가가 바뀌었다. 미쿠는 누군가에게 존재를 허락받는 존재가 아니라,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남아 있는 존재라는 것.

미쿠가 연임하는 방식과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미쿠는 상처받을 몸이 없고, 지칠 감정이 없고, 그만둘 이유를 느낄 자아가 없다. 그래서 계속 있을 수 있다. 인간은 다르다. 상처받고, 지치고, 이유를 잃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가능성을 안고서도 계속 살아가는 것이 인간에게만 가능한 일이 된다.

 

가희 실격. 인간 합격.

실격이 선고이면서 동시에 해방이 되는 순간, 미쿠의 노래는 듣는 사람의 것이 된다. 그리고 그 노래를 들으며 울거나 웃는 사람이 있는 한, 미쿠는 오늘도 연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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